세계한인민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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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 너무 잘 생기셨어요"



▲  하루만에 완성한 추도식 자리치곤 꽤 괜찮지 않습니까?     © 민주회의



"김대중 선생님이 이렇게 미남이셨어?"

18일 저녁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김대중 선생님이 정말 미남이라고 말한다. 엽서 때문이다. 한 때 김대중 도서관에서 일본지역 리서치를 담당했던지라 도서관 개관기념으로 받은 자료가 좀 된다. 등산용 조끼, 옥중서신, 그리고 엽서묶음.

아랫목 본관을 추도식 회장으로 바꾸면서 영정사진과 추모화환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벽면에 엽서를 붙였는데 의외로 이게 반응이 좋았다. 김대중 선생님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엽서들, 그 안에는 내란음모로 사형을 받던 고통스러운 재판사진에서부터 노벨평화상을 받는 영광스러운 수상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들이 있었지만 역시 젊은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맞서 당당히 사자후를 내 뿜는 이 사진에 버금갈 만한 것이 있을까?

그런데 이 사진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멋지다" 혹은 "잘 생겼다"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반응이 매우 기뻤다. 이번 도쿄 2주기 추도식을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정치, 사상적인 것들을 떠나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자기네들 할아버지 제사라 생각하고 잠깐이나마 헌화하고 향불을 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 이 추도식을 준비한 것도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사장님이 3일전, 그러니까 15일 오후에 갑자기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테츠야!"
"네?"
"그러고보니 8월 18일이 우리 선생님 기일이잖아."
"아, 그렇네요."
"인터넷 **봐. 추도식 같은 거 지내는 데 있을거야. 같이 가자."
"네. 잠시만요."

하지만 한참을 **봐도 안 나왔다. 도쿄에서 범위를 넓혀 사이타마, 지바, 가나가와 까지 뒤졌지만 추도식 하는 곳이 없었다. 한 20분 정도 검색하다가 추도식 하는 곳을 못 찾겠다고 말씀드리자 사장님은 "어, 그래?" 하면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선 한 5초 정도 흘렀을까? 손뼉을 한번 치더니 이러는 것이다.

"그래! 오케이. 알았어! 그럼 우리가 하지 뭐!!"

허걱...-_-;;; 매사에 이런 식이다. 처음엔 불가능하지 싶었다. 제대로 격식을 차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장소도 문제고, 무엇보다 사람들한테 알릴 방법이 별로 없었다. (일본은 보통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오봉야스미라는 이름의 장기휴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장소는 물론 사람들에게 연락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자 사장님은 "야, 뭐 어때? 그냥 우리끼리 선생님 제사지낸다고 생각하고 하면 되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만 연락하고 그러지 뭐"라고 전혀 부담갖지 말라고 하신다. 근데 이건 말 뿐이었다. 쿨럭.

"영정사진이 그래도 좀 커야 하지 않을까? 제사 지내는데 돗자리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촛대도 금색이 낫겠지? 향불도 제대로 해야지? 야, 선생님이 홍어찜 좋아하니까 그것도 좀 만들어야지. 음, 화환이 없는데 이거 화환 보내주실 분들 리스트 짜 봐...(이하 이런 류의 발언이 수도없이 나옴...-_-)"

사장님의 업무명령(?)은 하늘보다 무서운지라 모든 업무를 뒤로 돌리고 17일과 18일 오후까지 약 이틀간 사장님과 둘이서 추도식 준비에 골몰했다. 영정사진을 민주당에서 받아 그걸 다시 페덱스킨코스에 가지고 가 깨끗하게 확대해 판넬에 넣고, 아사쿠사 일대를 돌아다니며 향과 촛대, 촛불을 샀다.

다케야에 가서 '고자'(엉?)라 불리는 대나무 돗자리를 사고 평소 사장님과 잘 알고 지내는 몇몇 분들 및 단체에게 연락해 화환증정을 약속받았다. 나는 약 세시간 동안 전화기를 돌렸다. 대부분 선약이 있거나 지방에서 휴가 중이어서 못 오겠다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들 격려해주셨다. 또 블로그와 동유모에도 추도식을 공지했다.  
 




▲  식물학자 현정건 선생님. 87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직접 분향을 올리셨습니다.  © 민주회의




▲  추도식을 마치고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민주회의



18일 저녁 추도식 자리가 완성됐다. 원래 식당으로 쓰던 곳이라 별 기대를 안했는데 해 놓고 보니 꽤나 멋있다. 한국 전통식으로 꾸며놓은 인테리어가 추도식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문제는 과연 추도객이 몇 분이나 오실까 였다. 그런데 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추도식 예정시간보나 한시간이나 빠른 저녁 6시 30분부터 한분, 두분 모습을 드러내시더니만, 추도식 직전에는 약 40분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꽉 차버렸다. 그 안에는 재일동포 임계성 씨처럼 한국에 있다가 급히 연락받고 바로 공항에서 달려오신 분도 계셨다. 일본인 사모님을 데리고 오신 분도 계셨고, 클럽이나 맛사지 점포를 운영하시는 마마들부터 보석가공기술자까지. 물론 학생, 샐러리맨들도 있었다. 정말 다양한 각계각층의 '보통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님의 2주기 추도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에 맞춰 나타나신 것이다.

식물/약초학자이신 현정건 선생님은 "이런 행사를 준비해줘서 고맙네"라고 내내 사장님과 나를 격려해주셨고, 추도사를 낭독하신 양동준 세계한인민주회의 도쿄 상임대표님도 "대단허이. 바쁠텐데 정말 수고하셨네"라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호세이 대학에 유학중인 민지씨도 "이런 추도식을 일본에서 할 줄은 몰랐어요"라며 "내년에도 하실거죠?"라고 은근한 재촉(?)을 한다.

정말 급하게 준비한 추도식이었지만 참석한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참 뿌듯했다. 헌화할 때 각자의 종교에 맞추어 절을 하거나 기도를 올리거나 향을 태우는 모습들도 인상적이다. 약 30분에 걸친 추도식 후 이어진 2차 자리에는 절반을 넘는 스물 세분이 참석해 주셨다. 술자리만 가지는 게 그래서 김대중 도서관 개관 기념으로 예전에 받았던 등산조끼 10벌과 옥중서신 5권, 그리고 남은 엽서 두 묶음을 경품으로 해서 간단한 추첨행사를 가졌는데 당첨자 분들이 너무 흥분해하셔서 오히려 이쪽이 어리둥절할 정도였으니.

남녀노소, 계층차이를 뛰어넘는 민족의 큰 어른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느꼈다고 할까? 2차를 끝나고 귀가하시는 분들이 다들 내 손을 꽉 잡고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신다. 나보다 나이 어린 이가 거의 없으니 막내가 고생했다는 의미였지 않을까 한다. 그러고는 옆에 서 계신 사장님께 이렇게 물어본다.

"김 사장, 내년에도 또 할거지?"

사장님 한치의 망설임없이 즉답을 날린다.

"어휴, 그럼 물론이죠. 내년부터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 추도식도 할 생각입니다. 하하하. 이젠 어떻게 하는지 다 알았으니까요. (사이) 우리 테츠가 다 알아서 할거예요. 그지? 테츠야?"
"(이런...-_-) 아, 네. 당연하죠. 하하하."

김대중 선생님. 잘 지내시고 계시죠? 자주는 못 뵈어도 매년 한번씩 선생님 좋아하시는 홍어회, 굴비찜 마련해 놓을테니 한국 가셨다가 도쿄도 한번 들리세요.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오늘 참가해 주신 분들도 내년에 다시 뵈어요. 감사합니다...^^;;




▲ 미와코하고 준하고도 같이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미우와 유나는 이미 밥먹으러 간 상태라서 같이 찍질 못했어요. 흑)


글쓴이 / 테츠(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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